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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고 붙이며 다시 깨어난 콜라주 디자이너, 뚜띠 살타마르티니 (1)
디자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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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15. 11:44
한국통계청에 의하면, 2020년 한국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학사 졸업생은 21,072명으로 당시 한국 인구 5천만 명의 0.4% 정도가 된다. 그만큼 매년 대학교는 많은 전문 디자이너들을 배출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취업, 스튜디오 개업, 대학원 진학, 유학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전문성을 길러나가기 위한 길을 찾아간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어떠한 길을 선택하고 하나의 우물을 파며 그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고 인정받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그러나 가끔은 한숨 돌리고 쉬어 가야 할 시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 뚜띠 살타마르티니Tuti Saltamartini, 2022. © Tuti
아르헨티나 콜라주 그래픽 디자이너 플로렌시아 살타마르티니Florencia Saltamartini, 뚜띠Tuti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녀의 콜라주 작품은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영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의 창조적인 커리어는 그녀의 콜라주처럼 거칠고 복잡하고 어지럽지만, 동시에 아름답다. 그녀와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 포토몽타주photomontage나 콜라주collage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음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는데, 음악을 듣고 그 느낌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떨 때는 이탈리안 오페라도 듣곤 했는데, 이탈리아어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에 대한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제가 11살이던 당시 안드레스 깔라마로Andres Calamaro라는 아르헨티나 락 가수를 좋아했어요. 그때 아무 생각 없이 “나는 어릴 때부터 당신의 음악을 들으면서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았던 팬인데, 당신의 음악을 무척 좋아합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깔라마로의 음반 뒤에 적힌 스페인 마드리드의 소속사 주소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서 보니 집에 거대한 나무 색깔 봉투가 와있는 거예요. 언니들과 엄마 모두 택배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궁금해서 못 살겠으니 빨리 와서 봉투를 열어봐” 하며 보챘어요. 봉투 안에는 포스터, 팸플릿, 음반 등의 내용물이 들어 있었는데, 책을 열어보니 오색찬란한 다양한 이미지의 집합이 하나의 이미지로 묶여 책의 페이지들을 구성하고 있더군요. 저는 그게 ‘콜라주’라는 것도 모르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가면Otras máscaras, 디지털 콜라주 , 2021. © Tuti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할 때가 되어서야, 당시 그 이미지의 묶음이 콜라주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전공 1학년 수업에서 마노 네그라Mano Negra라는 프랑스 락 밴드 포스터를 디자인하라는 과제가 주어졌어요. 저는 어린 시절 깔라마로의 책에서 봤던 기법으로 이미지를 오리고 붙여서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교수님은 제 결과물을 보고 “그건 포스터 디자인이 아니라 다른 거야”라고 지적을 했어요. 그 ‘다른’ 것이 제 생에 첫 콜라주 작품이었습니다. — 제가 알기로 대학 시절 디자이너님의 콜라주는 매우 우수했어요. 그런데 졸업 이후 콜라주 디자인을 그만두었죠. 그 이유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혹시 슬럼프를 겪으셨던 건지요? ‘리얼 라이프’, 현실과 부딪쳤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사무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후 절망스러웠습니다. “아니… 이렇게 고생해서 아르헨티나 명문대를 졸업했는데, 내가 배운 것들을 어디에 써먹지?”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웠습니다.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A부터 Z까지 배웠다고 한다면, 사회생활이 시작되고 제가 담당한 디자인 작업은 A에서 한치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반복적인 업무 처리와 CI 매뉴얼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현실이 몇 년간 지속되자 제 창의성이 메말라버린 것 같았지요.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 아직도 공식적인 디자인을 하기는 하지요.
크리스탈Crystals, 디지털 콜라주 , 2021. © Tuti
— 정확히 어떤 회사에 다니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 경험을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요. 저는 졸업 직후부터 광고 회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 과정을 통해 배운 것도 많습니다. 아르헨티나 디자인계의 대가들도 알게 되었고 집단생활을 하면서 팀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지도 배우고, 디자인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도 있어요. 창의성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잠을 자다가 더 힘있게 깨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디폴트Default 음반 디자인, 디지털 콜라주, 2020. © Tuti
— “창의성이 잠에서 깬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디자이너님의 창의성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잠에서 깨어났지요. 아르헨티나는 262일이라는 긴 자가격리 기간을 거쳤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 블루를 겪을 때 디자이너님은 이사, 결혼, 새로운 디자인 프로젝트 등 많은 일을 하셨더군요. 네, 잘 요약해주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회사에 다니면서 프리랜서로서 디자인 작업도 병행하곤 했어요. 그러니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는지 창의성은 점점 더 메말라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세상이 멈췄어요. 그때 저는 음악가인 연인과 사귀고 있었는데, 정부가 자가격리 지시를 내리자 저는 그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어요. 그는 신곡 작업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 사는 친구가 시집을 편집 중이었는데요, 이 두 사람이 저에게 콜라주 디자인을 해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미노타우로Minotauro 음반 디자인, 디지털 콜라주, 2020. © Tuti
창조적인 디자인을 몇 년 동안이나 하지 않은 저는, 콜라주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잠시 눈앞이 깜깜해지고 혹시라도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까지 느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영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창의성이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대학에서 콜라주를 만들 때 사용했던 노하우와 도구가 마음 한편에, 책상 한구석에 가지런히 놓여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 같았어요.
미노타우로Minotauro 음반 디자인 플레이리스트 화면, 디지털 콜라주 , 2020. © Tuti
연인의 음반 디자인을 완성했고, 그는 물론 그를 지지하는 팬들의 호응도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음반 디자인의 인기에 힘입어 바르셀로나 시청 포스터 디자인 공모전에 콜라주를 해서 보냈는데, 그 작품으로 스페인 시민들의 투표를 통해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제 친구가 부탁한 시집 표지 디자인 역시 넘치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 개의 버전을 보냈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며 두 버전 모두를 사용했습니다. 그 책은 영국에서 발행되어 유럽 곳곳에 알려졌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그 누구의 지적이나 간섭 없이 마음껏 창의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습니다. ▼ 2편에서 이어집니다.
글 | 디자인프레스 해외 통신원 김엘리아나 (designpress2016@naver.com) 사진 작가 | 멜리사 로시오 로메로Melisa Rocío Romero 자료 제공 | 뚜띠 살타마르티니Florencia Saltamartini 인스타그램
'네이버디자인' 콘텐츠는 디자인프레스의 네이버 채널(블로그·포스트·네이버TV)을 통해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 디자인프레스는 창작과 기획 분야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기 위해 2021년 12월 '헤이팝'을 론칭했습니다. '네이버디자인' 주제판에서 많은 분들이 애정해 주셨던 '오크리에이터'와 '잇프로젝트'는 리뉴얼을 거친 후 '헤이팝'을 통해 다시 인사드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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